
죽음의 십자가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엉뚱한 짓이다.
하나님 앞에는 죽은 이가 없다.
육신을 가진 이와 육신을 벗어난 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 앞에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살아있고
모세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 있다.
그런데 살려 달라고 매달리면 얼마나 엉뚱한 일인가?
죽을병 걸린 사람이 다급한 나머지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신다면 … 하겠습니다.” 한다.
그러나 용케 죽지 않고 살아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쉽게 잊고 만다.
그가 거짓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때 정말로 그런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쭉정이로 남아 있다가
추수 때가 되어 밑동이 잘릴 위기에 처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러나 추수를 늦춘다고 쭉정이가 알곡 되지는 않는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일 때 살려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인생도 모르는 필부에 불과하다.
예쁜 꽃을 보았다. 만져 보았다. 생화가 아닌 조화다. 실망한다.
생화가 아닌 조화라는 것을 아는 순간
그 예쁜 꽃에 대한 감정이 반으로 줄어든다.
꽃의 소중함도 반으로 줄어든다.
언제든지 싱싱한 것 같은 조화는
그 영속성 때문에 그 아름다움도 가치가 적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곧 시들기 때문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곧 늙기 때문이다.
인생이 소중한 것은 죽을 존재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몸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절망이다.
그러면 영혼이 영원히 사는 것은 어떠한가?
그것도 절망이기는 마찬가지다.
영혼불멸은 좋은 것이 아니다. 영원한 형벌이다.
촛대를 만들고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웠다.
초에 불을 붙이면 미련 없이 타버릴 십자가,
십자가와 함께 소멸될 것을 소망한다.
-김홍한목사의 <십자가 묵상 2>, 대장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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