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택함을 받은 이로써 부름에 어울리게 살아가리라!’
1. 호세아 2:19[히21절] (구약 1259쪽).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 요한복음 15:16 (신약 174쪽).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남편이시다. 이스라엘과의 혼인은 곧 그녀가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 가운데 살게 되었음을 말한다. 혜택과 동시에 의무다. 남편은 ‘주인’이라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내 남편’[이쉬이]으로 불리게 되지 ‘내 주인’[바알리]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16절). ‘내 주인’은 이중적인 뜻을 가진 단어 ‘바알’로 이 단어는 남편을 뜻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주신으로서 아내를 지배하는 주인이었던 바알과 달리 아내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동시에 의롭고 진실하신 남편이시다. 굳이 번역하자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내 남자’라고 부르고 ‘내 주인양반’이라 부르지 않게 될 만큼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금슬 좋은 부부가 된다.
예수께서 그의 사람들 곧 그들을 제자들을 삼으신 것은 그분의 선택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 선택은 그들을 불러다가 종이나 심부름꾼을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히려 이들을 자기의 친구를 삼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 행위가 이미 사랑이며 목숨까지 주는 사랑을 통하여 친구로 만든 것이다(13-15절). 사랑은 거기에서 절정에 이른다(cf. 10:7-21[11.15]). 목숨을 주는 그것보다 더 큰 우정이 어디 있는가? 친구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이는 또한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받은 그 사랑은 그래서 이제 의무가 된다. 기꺼이 따르게 되는 명령이다(14.17절). 그것이 예수 제자의 특징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은 우리에게 늘 넘치는 것이고 우리를 감격하게 하여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합니다. 사랑의 자유와 기쁨을 강권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그리하여 배은망덕한 이로 살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은 우리에게 무거운 책임이 되지만 기꺼이 지켜가는 가치가 되게 하시고 그렇게 주님께서 먼저 하신 것을 우리도 마음 다해 따라함으로써 주님의 사람임을 드러내고 우리의 신분을 보존해가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사랑함으로써 사랑 받은 이의 삶에 어울리게 하시고 주님을 통해서 진정으로 배우게 된 것을 또한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76장 (창조의 주 아버지께); 319장 (말씀으로 이 세상을);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93장 (성령의 봄바람 불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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