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마음에 받은 상처는 흔적을 남깁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말하지만 세월이 지나 겉은 아물어도 속은 곪아 더 힘들게 하는 상처도 있고, 아물지 않아 불쑥 튀어나와 아픔을 주는 상처도 있습니다.
통증을 많이 느끼는 급소처럼 유난히 아픔을 주는 상처가 있습니다.
형제간의 차별이 상처로 남으면 경쟁하는 상황이 급소가 되고, 억울한 누명을 쓴 트라우마는 조금이라도 억울한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하게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덧나는 경험을 한두 번 하게 되면 사람들은 급소와 같은 상처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노출되지 않고 아픔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무장합니다.
높이 달려 뛰어올라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포도를 포기하며 여우가 말합니다.
‘나는 포도가 시어서 안 먹는 거야.’
포도가 시어서 먹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여우의 이야기는 이솝의 우화에 나타난 방어기재입니다.
이처럼 덧난 상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재’를 만들어 갑니다.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타인과 과거입니다.
과거에 받아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마음의 상처는 누구에게나 괴로운 아픔입니다.
안타깝게도 과거에 입은 상처는 바꿀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울 수 없는 이유는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시간 개념을 뒤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끝난 일인데 마치 지금 옆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혼동을 줍니다.
뇌가 착각하여 일어난 현상입니다.
평소에는 잘 알고 있는데 술에 취하거나, 컨디션이 나빠지거나, 비슷한 사건이 생겨나면 분별을 잃게 되고 현재와 지나간 일을 혼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한 편의 공포영화를 보고 나온 것과 비슷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귀신과 좀비가 튀어나와 두려움에 질려 움츠러들고 비명을 질렀지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 종전의 공포는 현실과 무관합니다.
그런데 뇌는 자꾸 헷갈려 합니다.
그럼으로 그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줘야 합니다.
‘공포와 두려움, 상처는 다 지나간 일이다’고 뇌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윤홍균 [자존감 수업] 中에 나오는 글을 요약 정리함)
** 마음에 받은 상처는 흔적을 남깁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겉은 아물어도 속은 곪아 더 힘들게 하는 상처가 있습니다. 또 아물지 않아 불쑥 튀어나와 다시 아픔을 주는 상처도 있습니다.
급소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유난히 통증을 주는 상처가 있지요.
형제 간의 차별이 남긴 상처는 경쟁 상황에서 급소가 되고, 억울한 누명이 트라우마로 남으면 조금이라도 억울한 상황이 생길 때 자신도 모르게 방어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런 상처가 덧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상처가 드러나지 않도록, 아픔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무장합니다.
이솝 우화 속 여우가 먹을 수 없는 포도를 향해 “저 포도는 시어서 안 먹는 거야”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처럼, 우리는 방어기제를 만들어 상처를 보호하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타인과 과거입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는 누구에게나 괴로운 아픔으로 남습니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상처는 바꿀 수도, 지울 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시간 개념을 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끝난 일인데도 마치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뇌가 착각을 일으킵니다.
평소에는 잘 구분하다가도 술에 취하거나, 몸이 지치거나, 비슷한 사건을 만나면 현재와 과거를 혼동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는 마치 공포영화를 보고 나온 것과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귀신과 좀비가 튀어나와 두려움에 떨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 그 공포는 현실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뇌는 자꾸 헷갈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알려주어야 합니다.
“공포와 두려움, 상처는 다 지나간 일이다”라고 뇌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붙잡혀 있는 이들에게 치유의 선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증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다.”
십자가 은혜로 거듭난 성도는 경험도, 시간도, 상처도 모두 지나가고 주의 은혜로 새롭게 변화된 존재입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 안에 있으면 과거의 모든 시간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상처와 아픔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는 내 영혼과 마음, 기억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뇌에게 매 순간 알려주어야 합니다.
지난 상처는 모두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뇌가 완전히 받아들이도록 소리 내어 들려주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오고 불안이 일어날 때 큰 소리로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다 지나간 일이야. 지금은 괜찮아. 예수 안에 있는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야.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고 나는 새롭게 되었다.”
오래된 상처일수록 더 자주 알려주어야 합니다.
뇌가 오랫동안 잘못된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에 더 큰 소리로, 더 자주 반복해야 합니다.
금주에는 반복훈련을 권합니다.
날마다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소리 내어 암송하십시오.
하루에 열 번, 백 번이라도 내 귀를 통해 뇌가 듣도록 하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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