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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의 의미
2025-09-08 10:40:20
신솔문
조회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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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생 시절, 어쩌다 한나절 짝꿍을 했던 급우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필요가 없단다

 

공부에 전념했던 그가 선의를 가지고 진지하게 조언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 같은데요. “간접경험으로도 충분한, 잡다한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젠가 그의 근황을 친구에게 물어보니 S대 교수로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당시에는 이 조언의 진가를 몰랐습니다. 인생이 뭔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 중의 하나가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닌가 싶어요.

 

뒤늦게나마 간접경험에 대한 이 기념비적 발언을 써먹는 상황은 여행 관련입니다. “실제 여행“TV 여행 프로그램사이가 직접경험 / 간접경험관계이니까요. 마음 편히 여행하기가 쉽지 않은, 저의 처지를 합리화할 때마다 실제 여행과 TV 여행 프로그램이 경험론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오히려 세계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는 장점이 TV에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2.

 

실제 여행과 TV 여행 프로그램에 대해 교조화된 저의 생각을 한순간 깨뜨리는 일이 지난 주중에 있었습니다. 운전 중 듣는 EBS 라디오에 박성호라는 여행작가가 나왔는데요. 간접경험에 대해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간접경험의 약점은 <고통의 부재>인 것 같습니다

 

부연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의미였을 겁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에서 촬영을 할 때 그곳에서 직접경험하는 자들이 겪는 더위와 해충의 괴롭힘 등등의 고통은 화면에 담기는 과정에서 그 생생함이 사라지고 관념화되어 전달되지요. 한여름에 냉방이 잘 된 자동차에서 차창 밖의 풍경이 가을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은 착각이 시청자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도 이 관계를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아무리 체감하려고 해도 관념화된 이 간접경험은 고통의 부재로 다가옵니다. 전도사 시절, 헌혈을 위해 먼 곳의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와서, 적합 판정을 받은 후 다시 가 헌혈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환자는 10대 남학생이었는데요. 헌혈 후 병실에 방문했을 때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타까워 그 고통을 저도 느껴보려고 애를 썼지요. 그런데 저에게 고통이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통인지 수도 없었고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아요. 개체(個體)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생히 느껴보려는 시도에 내재된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자기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라는 직접 경험을 통해 우리는 예수 십자가와 공명(共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가 십자가의 도()에 합류하는 요긴한 통로인 셈입니다. 공명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이고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7)

 

이러한 신앙생활을 잘 표현하고 있는 찬송이 457(갯세마네 동산의)입니다. “갈보리 산 올라간 주를 생각할 때에 나의 받는 괴롬을 비교할 수 없으리. 십자가를 지고서 주를 따라 가리라”(3)

 

 

[]

  • 주일찬양집회와 새벽기도회 말씀새김은 총회 묵상집 <말씀과 삶>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낭독설교를 할 때도 있으나 보통은 정리해서 구두로 전달하며, 특별히 새롭게 작성하기도 합니다. 어제 주일찬양집회에서는 제가 준비했습니다.
  • 사진은 825() 저녁 715분경, 잠시 보였던 풍경입니다. 맑은 날이었는데 구름 한 줄기가 물 흐르듯 남쪽에서 북상하다가 예배당 위에서 석양 빛을 받아 저런 풍광이 나왔습니다. 사진 제목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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