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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명예욕
2013-03-05 10:27:00
김주한
조회수   3107
명예욕

 

김주한(한신대교수, 교회사학)

 

   경제가 어렵다보니 시장의 원리란 말이 요즘 자주 오르내린다. ‘시장의 원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정부가 과감하게 각종 규제들을 풀어서 기업인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맘껏 투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어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시장의 자율적인 흐름에, 즉 수요-공급의 원칙에 맡겨두자는 말이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하에서 이런 주장은 교과서적인 해답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제도가 지금까지 말 그대로 시장의 원리로만 운영되어 왔는가? 결코 아니다. ‘시장의 원리에만 경제를 내 맡겨두면 자본의 속성상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이나 경쟁력 있는 상품만이 시장을 독식하게 되어 그 밖의 다른 중소 자본가들이나 기업들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을 칠 수 밖에 없다. 자본을 가진 기득권자들은 시장을 독식하여 가격을 올리기 일쑤이고 중소상인들이나 영세상인들이 먹고살만한 분야까지 돈이 될만한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투자를 해 싹슬이를 해대기 십상이다. 이러니 정부의 간섭과 규제,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나에게는 요즘 종교시장도 마치 시장의 원리에 그대로 방치된 현상처럼 보인다. 기독교만 보더라도 특히 개신교회들의 행태들을 보면 철저하게, 아니 처절하리만큼 양육강식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이점에서 중앙집권적인 가톨릭교회 시스템은 개교회 중심의 개신교회보다는 한결 나아 보인다. ‘시장의 원리로 보면 명성 높은 교회,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목사일수록 종교시장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명성이나 이름이 신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명 브랜드가 된다. 오늘도 이러한 유명 브랜드(category)에 끼어들기 위해 부단히 이 방면으로 노력한 목회자들이 부지기수다. 방송, 인터넷,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자신을 알리기 위해 피눈물 나는 교인들의 헌금을 마치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맘껏 쏟아 붙는다. 어찌 이런 일이 교계뿐만 이겠는가?

   사막수도사들이 가장 피눈물 나게 싸워 대적해야 할 마귀는 바로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명예욕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진정한 아바가 되느냐 아니면 이름이 알려진 인기인이 되느냐의 갈림길이었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인기가 없으면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성직자들도 이런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일까? 인기가 있어야 교회가 잘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고 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고 온갖 쇼를 해대는 성직자들이 요즘 눈에 부쩍 띈다.

 

어느 수도사가 마또에스 교부에게 물었다. “제가 어딘가에 가서 살게 된다면 거기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그대가 어디에서 살든 자신을 유명하게 만드는 짓은 무엇이나 애써 찾지 말게. 예컨대 나는 수도자들의 회합엔 가지 않는다혹은 무엇 무엇은 먹지 않는다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 말이야. 그런 실천은 근거 없는 명성이나 가져다 줄 것이라네라고 그 교부는 말하였다(마또에스 1).

 

아바 아가톤은 만약 누군가 내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 준다면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선함이 적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멀리 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아가톤 23).

 

노출되어 있는 보물이 그 가치를 잃어버리듯이 알려진 덕목도 마찬가지로 사라진다. 불 곁에 초를 두면 녹듯이 영혼도 칭찬에 의해 훼손되고 애쓴 모든 노력의 결과를 잃어버리게 된다(신클레티카 21).

 

   수도사들에게는 다른 정념들, 즉 정욕, 탐심, 분노, 슬픔, 무기력, 교만 등은 쉽게 알 수 있고 드러나기 때문에 금방 그것에 대적하여 기도하고 훈련하여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명예욕은 교묘하게 여러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그것에 유혹을 받으면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명예욕은 자만심에서 나온다. 침묵, 금식, 청빈, 겸손의 훈련 등을 잘 수행한 수도사들조차도 결국은 이런 모든 훈련과정들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었다는 자만심을 갖게 하여 어느 새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유혹에 빠져들곤 하였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금식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면 금방 금식을 깨버렸고 신유의 능력이 나타나 사람들이 몰려들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신유 사역 자체에 무관심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금식이나 신유보다도 남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보았고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 자체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황제 콘스탄티우스가 안토니에게 편지를 보내 콘스탄티노플 도시로 와 달라고 초청하였다. 다른 부탁이면 쉽게 거절할 수 있지만 황제의 부탁이라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안토니는 제자들과 이 일을 상의하였다. 제자 바울은 콘스탄티노플로 가면 사람들이 그냥 안토니라고 부르겠지만 가지 않으면 여기서는 아바 안토니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안토니 31).

 

   황제를 만나게 되면 외적인 명예를 얻게 되겠지만 영적인 덕목의 스승(아바)으로서는 오히려 더 명예를 얻지 못한다는 제자들의 생각이었다. 요즘 청와대에 한 번 들어가 대통령 만나 악수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목사들을 보면 황제의 부름에 대한 안토니의 거절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명예욕은 숨겨진 죄악이다. 따라서 높은 수도의 경지에 오른 수도자 일수록 명예욕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냉철한 자기반성을 하곤 하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훈련의 목표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자기 이름 드러냄이었다는 아픈 고백과 철저한 반성이 동반될 때에 비로소 다른 이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아바가 될 수 있었다.

 

군수가 어느 날 시몬 교부를 만나러 왔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교부는 허리띠로 사용하는 가죽 끈을 잡고 전지하기 시작한 빨마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방문객들이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이 독방에서 사시는 어른은 어디 계신지요?” “여기엔 은수도사가 없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군수는 돌아갔다(시몬 1).


 

   나는 신학생이 되기 전부터 국내의 여러 기도원들을 사뭇 돌아다니면서 몇 달씩 기거해 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소위 신유의 능력을 가지고 병자들을 안수해서 치료하는 사람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대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고 자신은 단지 도구로 쓰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를 즐기는 사람은 아예 고려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문제는 실제로는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도취형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의도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이미 자기 마음속에 자기 이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까지도 사막수도사들은 냉철한 자기반성을 통해 찾아내었다. 그래서 사막수도사들은 여러 형태로 포장된 이 짐승-명예욕(자만심)-을 정복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였다. 그런 유혹이 찾아올 때 수도사들은 항상 다윗의 말을 명심하곤 하였다.

 

너희를 대하여 진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시편 53:5).

 

   무슨 일이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하지 말고 마음속에서 자기를 자랑하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상급을 구해야 하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간주할 때 명예욕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 하십시오.”(고전 10:12). “나는. .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인이요. .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 .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빌립보서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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