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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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분노
2011-10-06 00:44:57
김주한
조회수   3927
분 노

김 주 한

  어느 영성수련 집회에 갔더니 그 수련 인도자(목사님)는 갑자기 참석자들에게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들을 퍼부어댔다. 참석자들은 모두 당황하기도 하고 일부는 ‘뭐, 이런 곳이다 있어’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도 하였다. 나는 내심 그 인도자의 'S자‘ 발음의 격음 소리에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도 느꼈지만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 해보니 그 인도자는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는 ‘화’를 끄집어내기 위해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무척 약을 올렸다고 한다. 인도자의 의도는 그렇게 해서 차곡차곡 참아둔 화가 있다면 발산하도록 해서 문제의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스스로 보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화내고 있는 일이 정말로 화 낼 일이었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격한 욕을 해대고 약을 올려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일수록 아주 수련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 분은 ‘화를 참는 것보다는 내는 것이 더 좋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화를 다스리는 것이 좋다’는 말도 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 전 국내에서 화제가 된 팃 낙한 스님의『화』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가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부딪친 감정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들이 왜들 그렇게 화 나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마치 전 국민이 화 나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 만큼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개인에게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공의(public justice)를 위한 분노는 ‘거룩한 분노’라고들 말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거룩한 분노’를 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을 했던 생각이 난다.

사막수도사들이 수도훈련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감정훈련이었다. 육체의 훈련을 통해 몸을 다스리고 생각의 훈련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다 할지라도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해 버리면 모든 훈련이 일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감정 훈련도 육체의 훈련처럼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부단한 훈련을 하였다. 감정이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돕기도 하고 반대로 철저히 방해하기도 하였다. 수도사들은 감정 훈련을 통해 무감정(아파테이아) 상태에 도달하기를 추구하지 않았다. 수도사들에게 무감정이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감정을 하나님에게 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스려야 할 감정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중에서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은 특히 중요하였다. 분노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분노는 인간관계 그 자체에 해를 가하는 악이다. 이 악은 자신과 상대방에게 육체적인 손상을 가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분노는 이웃에 대한 감정 살인이다. 분노는 일상사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수도사들에게는 분노를 이기는 방법으로 분노와 연관된 감정을 얻거나 또는 없애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그들은 화가 나는 상황에서 단순하게 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화 자체가 나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하는 방식과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한 수도사가 아바 이시도레에게 악마가 이시도레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수도사가 된 이후로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절대 없도록 노력했기 때문일세.”(이시도레 2).

수도사들은 이세도레 처럼 화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무엇보다도 남을 판단하지 않는 훈련을 하였다. 판단하는 일은 모든 분노의 시작이다.

판단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아바 아가톤은 이렇게 속으로 다짐하였다. “아가톤,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할 일이 아니지”(아가톤 18).

다른 형제에게 부당하게 당한 한 수도사가 아바 시소에스를 찾아와서 “제 형제가 제게 상처를 줍니다. 저는 복수하고 싶습니다.”하며 이야기를 했다. 아바 시소에스는 “복수를 하나님에게 맡기시오.”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 형제는 “복수하기 전까지는 제게 편안함이 없습니다.”고 고집하였다. 아바는 함께 기도하자며 일어서서는 “하나님, 더 이상 저희를 돌봐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다 알아서 판단하겠습니다.” 하며 기도를 올렸다. 이 말을 들은 그 형제는 아바의 발에 엎드려 “더 이상 제 형제를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시소에스 1).

제자들의 감정을 훈련시키고자 아바들은 의도적으로 제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기도 하였다. 모욕을 참고 견뎌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준 모욕의 강도는 인간의 존엄성 자체까지도 허물어뜨릴 정도로 심하였다.

아바 안토니가 한 수도사에게 여러 가지로 모욕을 주었다. 그러자 그 수도사는 그런 모욕을 견뎌 내지 못하였다. 이를 보고 안토니는 “자네는 마치 겉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으나 안에는 도둑이 들어와 다 폐허가 된 마을 같구만”(안토니 15).

아바 아킬레스가 침을 뱉는데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다른 이가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아킬레스는 한 형제의 말이 늘 자기를 가슴 아프게 하는데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기 위해 늘 기도하고 있으므로 드디어 이렇게 입에서 피가 되어 나왔다고 대답하였다(아킬레스 4).


수도사들은 마음의 평정은 외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가져다 준 것은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모욕을 견디며 다져진 마음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높은 경지에 오른 음악가들은 연주자의 악기 소리를 듣고서도 연주자의 마음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감정이 섞인 연주는 제 음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이 악기 소리라면 분노가 섞인 말들은 분명 사람들의 귀에 짜증나는 연주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오랜 훈련을 통해 분노에서 완전히 벗어난 담금질되어 나온 말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악기소리가 될 것이다.

“화를 쉽게 내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잠언 15:18),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사람의 슬기요.”(잠언 19:11).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마태 5:22).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마태 5:24).

손자의 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의 결론은 "서로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이다. 말하자면 상처를 주고 받는 가운데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까 고민하기 보다는 아예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자정이 훌쩍 넘긴 이 시간 나는 그 옛날 믿음의 선배들(사막 수도자들)이 했던 훈련 방법을 채용해 볼까 생각하면서 이렇게 기도해 보기로 다짐한다.

"주님, 제가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치유해 주시고 저를 용서해주세요."
"주님, 제가 아무개로부터 상처를 받았는데 저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그분을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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