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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10월은 루터의 달입니다
2011-10-06 00:57:18
김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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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된 사람, 마르틴 루터

 

김 주 한 교수(한신대학교, 교회사학)


10월은 루터의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동북부에 위치해 있는 비텐베르크 시에서 하나의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해프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비텐베르크에 있는 성교회(Castle church, 당시 작센 주 영주였던 프레드릭 현자의 개인 채플실 나중에 비텐베르크 신학부 채플실로 사용됨) 교회당 문짝에 마르틴 루터라는 사람이 저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했던 일이 벌어졌지요. 기독교역사에서 개신교의 생일이라고 불리는 이 날은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 2017년이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국내외적으로 프로테스탄트 500주년을 앞두고 여러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한다"는 표어를 모토로 삼고 있는 우리 기장교회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종교개혁 5백주년을 맞이하여 그 정신을 어떻게 새롭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하여, 저는 종교개혁 전공자로서 먼저 루터라는 사람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517년 10월 31일 독일 동북부에 위치한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부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당시 작센 주의 영주였던 프리드리히 현자(Frederick the Wise)의 채플로 사용되었던 성(Castle) 교회당 문에 이른바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봉화를 올렸습니다. 그가 분기탱천하여 대자보를 붙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면죄부’(Indulgence)판매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되었지만, 중세 말엽부터 누적되어 온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중세사회의 여러 위기적인 상황들이 서로 교직되어 사회적 불안요소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지요. 루터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있던 대중들의 불만을 터뜨린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면죄부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로마 천주교인들은 개신교인들이 중세 때의 일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불만입니다. 천주교인들의 항변도 이해할만 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진정한 교회 일치나 연합운동은 어려워지겠지요. 그러나 천주교회가 말하는 ‘면죄부’ 제도는 여전히 지금도 천주교회의 중요한 전례(Sacraments)중의 하나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대사’(全大赦, plenary indulgence)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대사’란 신자가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할 때 자신의 죄 값에 대한 보속을 치르고 남은 잔벌을 일시에 사면해 주는 제도입니다. 천주교는 신자가 죽으면 자신의 잔벌을 다 보속할 때까지 연옥에 머물다가 모든 죄를 다 사면 받은 후에 비로소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대사’를 통해서 현 시점까지 쌓였던 잔벌을 일거에 다 사해 주는 ‘면죄부’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문제는 루터가 살았던 시대에 이 제도가 너무나 타락해 버렸다는 겁니다. 면죄부 제도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부터였는데요, 성지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전장에 나가 이교도들과 목숨을 내걸고 싸우겠다고 지원한 군인들에게 교황청은 면죄의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14, 5세기 접어들어 이 제도는 ‘면죄부’라는 티켓으로 둔갑하여 교황청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습니다. 면죄부 가격도 신분에 따라 차등이 있었습니다. 죄 값도 신분이 높을수록 더 많이 치렀다는 것은 아이러니 합니다.


‘95개조 반박문’에서 루터가 주장한 핵심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면죄부’제도는 성경말씀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삶 전체를 타락시키는 사악한 마귀의 장난이라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흔히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구원을 받지 인간의 어떤 공로나 노력은 구원의 과정에 필요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루터가 말한 핵심은 ‘죄인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를 알아야 하고 그래서 신자들은 죄의 공포로 불타야 한다’는 겁니다. 이같은 고통(Anfechtung)으로부터 구원은 시작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면죄부는 죄인의 참회 생활을 파괴해 버린다는 겁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자신에게는 어떠한 의로움도 없다고 믿을 때 구원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며 은총을 통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맛보게 된다는 것이 바로 루터의 핵심 주장입니다.

루터는 어떻게 이러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까?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현재 독일 동북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루터를 어려서부터 엄격하게 교육시켜 법률가로 키울 작정이었지요. 그래서 루터는 당대의 명문 에어푸르트(Erfurt)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법률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고향 집에 들렀다가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천둥번개가 치는 폭우를 만나 길 바닥에 쓰러졌다는 겁니다. 루터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성 안나여,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답니다. ‘성 안나’(마리아의 모친)는 당시 독일 동북부 지역 광부들의 수호성자였습니다. 이때가 1505년 7월 2일, 루터의 당시 나이 22세 때였습니다. 루터는 법학부를 그만 두고 수도원에 입회하여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곱게 자란 아들이 갑자기 신부가 되겠다고 하니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지요. 그러나 자식 이긴 부모 없다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결심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수도원에 머물면서 루터의 최대 관심사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장 16절, 17절을 읽는 순간 그의 심장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지 어떻게 인간의 업적이나 공적이겠는가?’ 그때부터 루터는 자신의 깨달음을 성경 강해를 통해 더욱 구체화시켜 나갔고 그 깨달음은 결국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인 겁니다.

교황청을 향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는데 루터의 신변은 안전했을까요?

아니지요. 교황청은 그를 공개적으로 소환시켜 종교재판에 회부하려고 온갖 협박을 가하였습니다. 순박한 시골뜨기 신부 한 사람이 골리앗보다 더 힘이 세고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던 교황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치기인 셈이었지요. 그러나 목동 다윗을 불러 골리앗을 무너뜨리게 하신 분이 하나님 아닙니까? 교황청이 압박을 가하면 가할수록 루터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져갔습니다. 교황청의 파문장도 불살라 태워버릴 정도였으니까요.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바로 루터입니다. 그의 담대하고도 비장한 믿음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찬송가지요. 로마로의 소환에 계속 불응하자 교황청은 독일 영내에 있는 도시 보름스에서 제국국회를 소집하여 루터를 심문하였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정치인, 추기경 및 시민들이 루터의 심문에 참석하습니다. 그들은 가슴 떨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았던 겁니다. 제국 심문관은 루터를 향해 ‘지금까지의 입장을 철회하고 로마 교황청의 가르침에 순종하겠다고 하면 파문을 철회하고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회유 아닌 협박을 하였습니다. 루터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여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저 유명한 최후 변론을 하였습니다.

“존경하는 폐하, 제후 여러분!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또 취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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