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소유
2011-03-27 20:40:28
김주한
조회수 2668
김주한(한신대 교수, 교회사학)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곤 한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 또 돈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최대의 관심인 요즘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맘껏 자유하며 사랑하며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신선한 재미가 아닐 수 없다. 목사인 나는 소유 문제에 관해 고민하곤 한다. 그래서 성경적인 물질관을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소유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니었다. 소유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셨다.(마태 6:19-22, 19:21; 누가 16:19-31 등) 하지만 많은 재산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큰 걸림돌이었다.(마태 19:24)
그래서 일찍이 기독교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수도원 체제 자체가 개인의 소유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수도원 소속 수도사들은 자연스레 무소유의 삶을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수도원 제도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의 개별적인 은둔수도사들(hermits)은 소유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해야 했다. 이들은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을 소유하는 것은 죄악 된 마음으로 간주하였다. 페르메의 아바 테오도레는 우연한 기회에 좋은 책 세 권을 선물 받았다. 이 책에서 그는 대단히 유익한 내용들을 배웠다. 그런데 왠지 이 책들이 자기 개인의 소유처럼 느껴져 아바 마카리우스에게 가서 이 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논하였다. 무소유가 최선이라는 마카리우스의 권면에 따라 테오도레는 책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무소유의 원칙이 수도사들에게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바 엘리아스는 자기 시대의 수도사들을 자기 앞 세대의 수도사들과 비교하면서 앞 세대가 ‘가난’, ‘순종’, ‘금식’의 삶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던 반면에 지금 세대는 ‘탐심’.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책망하였다.
수도사들이 소유를 경계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바 이시도어는 소유욕이란 만족을 모르는 것이어서 영혼이 한 번 이 소유욕에 붙잡히면 헤어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수도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영적 훈련의 엄격한 잣대를 소유에 두었다. 어느 형제가 세속을 버리면서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그 재산의 얼마간을 남겨두고 수도사의 대부 안토니를 찾아갔다. 안토니는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수도사가 되고 싶다면 마을로 가서 고기를 사게. 옷을 벗고 맨살에다 그 고기를 바른 후 다시 오게”했다. 그는 그렇게 했는데 개와 새들이 그의 몸을 발기발기 찢어놓았다. 그 사람이 안토니에게 돌아오니 안토니는 그대로 했는지 물었다. 그 사람이 상처투성이인 자기 몸을 보여주자 안토니는 이렇게 말하였다:“세속을 버리면서도 돈을 갖고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악마들이 그를 공격해 올 때 그처럼 발기발기 짓찢기고 만다네.”
중세 중반기에 접어들어 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탁하여 권력화 되자 수도원도 많은 재화를 축적하게 되었다. 내놓고 청빈하게 살겠다고 한 집단이 물질의 욕망에 사로잡혀 부패했을 때 그 모습은 참으로 추한 것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외쳤다:“이웃을 위해 쓰여 지지 않는 모든 재물은 다 도둑이요, 강도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전율을 느끼곤 한다. 왜냐하면 나는 목사이지만 여전히 ‘소도 사야하고 밭도 사야하고 집도 사야하기 때문에’ 물질 소유로부터 온전히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록 돈은 없어도 마음이 부요하면 된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심리적 처방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청빈하게 사는 것과 빈궁하게 사는 것, 검소하게 사는 것과 가난하게 사는 것, 소박하게 사는 것과 초라하게 사는 것 사이의 경계선이 내게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물론 이해는 가지만. 그래서 나는 소유와 관련해서 나름대로 하나의 경구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稚).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로써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유치하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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