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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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이 되는길
2011-09-03 16:58:28
박원근
조회수   2930

제목 : 복의 근원이 되는 길.


창 12:1-3, 22:6-13




중앙아시아에 고려인 1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사이는 우정이 돈독해서 지난 우리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은 극진한 환대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이슬람국가라서 기독교 선교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4년 전의 일입니다. 한재성 선교사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선교를 하다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괴한이 들어와 당년 35세인 아내를 죽이고, 때마침 집에 도착한 한재성 선교사에게 일격을 가해 실신시켜 놓고는 도주해버렸습니다. 그는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글을 아내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과 함께 했던 지난 10년의 세월은 너무나도 행복하였소. 당신은 나의 천사였습니다. 우리는 순교할 각오를 하고 이곳에 왔지만은, 정말 하나님이 당신을 이렇게 순교하게 하실 줄이야! 내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소. 남은 수많은 날들을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이 아픈 가슴과 깨어진 심령, 뼈 속 깊이 사무쳐 오는 슬픔을 어떻게 이기고 살라고, 이 어린것들은 어떻게 하고,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날 수가 있었소! 당신을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큰 그리움이 고통으로 다가오는지, 못 다한 사랑 아직도 많은데, 아직도 내겐 당신을 더 사랑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제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음이 한이 되오. 사랑하는 아내여, 나도 당신과 같이 이 땅에 뼈를 묻겠소. 당신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너무도 순결하고, 아름다웠소. 이 민족이 주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당신의 희생이, 당신의 생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를 재물로 바치라”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가 피를 흘리고 죽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 땅의 믿음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 된지 아십니까? 지금부터 4,000년 전 하란 땅 지금의 시리아 북부에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야훼가 나타나 아브람아, 아브람아,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와 조카 롯,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많은 짐승들, 여러 노비까지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떠났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살기 힘들어서 이민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시니, 여러 가지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난 것입니다. 그의 가나안 생활은 쉽고 안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척자와 선구자, 선지자들이 다 그러했듯이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에서 편안히 잘 살고 있는 아브람을 불러내서 그토록 어렵고 험난한 광야 길을 가라 하신 것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내가 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개천이란 환경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가문이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개천을 가문의 귀천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착각해 왔습니다. 개천을 사람이 타고나는 운명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용이 될 사람인데, 개천이란 환경 속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과 같이 편안하고 안일한 개천에서는 용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온실에서 끌어내서 열사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로 내 모신 것입니다. 광야, 그 곳은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조차 없는, 사나운 짐승과 악령이 득실거리는 황량한 땅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고, 하나님 인도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에서 아브람의 삶은 안일하고 편안한 삶이 아니라 모험과 도전, 긴장과 갈등, 고뇌와 싸움, 결핍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한 족장의 아비 아브람은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이 되어 나옵니다. 25년이란 긴 세월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룰 독자 이삭이 탄생합니다. 이삭의 탄생은 기쁨이 없었던 그의 가정에 웃음의 원천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삭이란 ‘웃기셨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 중에 누가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고 합시다.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얼마 후에 그 웃음은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가 지시하는 곳,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슨 청천에 날벼락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주신 아들, 이삭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요, 희망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약속을 파기시키는 하나님을 더 이상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차라리 네 생명을 내노라면 쉽겠는데 아들을 바치라니 어떻게 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자녀가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날 부모들에게 자식이 우상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일을 가지고는 이해심도 많고 관용을 잘 하는 분들도 일단 자녀 문제에 걸리면 그렇게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돌변해버립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모리아 땅으로 가서 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들, 이삭을 데리고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으로 가는 이 3일 길을, 성서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으나, 그 길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견디어내기 힘든 고뇌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의 고통은 “내 아버지여, 나무도 있고 불도 있고 칼도 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으로부터 이 질문을 받고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했을 때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결박하여 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빼들고 내리치려 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는 신의 음성이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죽이는 고통의 길, 자기희생의 길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고, 하나님의 선교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이 길을 가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독자 이삭을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날, 인본주의와 합리주의 사상으로 교육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만일 그러한 하나님이라면, 믿을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아비에게 사랑하는 자식을 제물로 요구하신 단 말인가? 그것은 인륜과 천륜의 파괴라고 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요구를 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릴 수 없다면, 종교는 성립 조차될 수가 없어요. 그가 믿는 하나님 신앙은 허상이요, 거짓일 뿐입니다. 신이 요구한다면, 내 자녀까지도 바칠 수가 있을 때, 거기에 종교의 진실이 있고, 거기에 종교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다 바쳐도 이것만은 바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우상이요, 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인들 중에도 진짜 신은 따로 있고, 그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얼마든지 빈껍데기일 수가 있다 말입니다.



신의 뜻을 이루는 일이라면 백세에 얻은 독자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복한 하나님의 사자는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한 하나님께서는 직접 아브라함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 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구원과 축복의 모델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십니까? 인류구원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은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모리아 땅으로 가는 길은 골고다로 가는 길의 예표였습니다. 성서의 구원의 역사가 지시하는 길은 그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도 버려야 하고, 자기 자신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버림 없이는 이웃을 구원하기는커녕, 자신의 생명조차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 진리의 틀 안에서 이끌어 가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고,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사도들이 그러했고, 2000년 교회의 역사가 다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주님, 제발 십자가의 길만은 피하십시오.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메시아가 되실 수 있지를 않겠습니까?” 이렇게 간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고서 어찌 열매 맺을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만일 있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죽는 길이 사는 길이요, 잃는 것이 얻는 길이다”는 이 역설적인 진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하는 길이고, 여기에 믿는 자들의 고뇌가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축복받고 내 자녀가 잘 되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창대하게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길은 다만 하나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그 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걸었던 모리아 땅으로 가는 길이요, 우리 주님이 걸으셨던 골고다로 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오직 이 길만이 나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창대하게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도를 이룬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축복을 받게 됩니까? 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세계 종교인의 70%, 전 세계 인구의 50%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샘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은 “우리도 이 길을 걸어 이 시대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고, 길이 되어 주라 하십니다. 진리가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라” 는 것입니다. 이 복의 근원이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어려운 길입니다. 이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이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주님께서 나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살리기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는 이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 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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