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여성성을 나타내는 “라함(רחם)”에 대한 묵상, 그리고 시편 18:2[1]의 새로운 해석 제안
1. 하나님의 여성성을 표현하는 구절들에 대한 고찰
가부장제 문화권에서 하나님이 남성으로 표현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어머니 같은 하나님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여성성을 나타낸다고 알려진 구약의 표현들 중에는 1) 유방/(젖)가슴, 2) 시2:7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그리고 3) “자궁”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가지고 모성애를 표현하는 라함(רחם)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 셋 중 처음 두 가지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나타낸다고 논증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선, 여성의 가슴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샤드(שַׁד)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가슴을 표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엘 샷다이”가 젖가슴 달린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설명 역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원은 여성의 가슴뿐 아니라 산, 동산, 언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산의 둔덕과 여성의 가슴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의 문맥으로 보면, “엘 샷다이”라는 하나님의 호칭이 하나님의 여성성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혹자는, 호세아 11:4의 새번역성경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는 구절을 근거로 모유수유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성경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번역은 지나친 의역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가슴”이라는 단어도, “젖을 물리다”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그 다음,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여성성을 나타낸다는 주장 역시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아버지가 자식을 “낳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표현이 아닙니다. 창 4:18, 창10:8, 13, 15, 24, 26, 22:23, 25:3, 대상1:10, 11, 13, 18, 20 등에서는 모두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동사 ילד의 칼 형)”고 표현되어 있으며, 잠 17:21 “미련한 자를 낳은 자” 역시 남성입니다. 따라서,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구절을 곧바로 하나님의 여성성과 연결하는 것은 그리 튼튼한 고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와는 다르게, 여성의 자궁을 나타나는 레헴(רֶחֶם)에서 파생된 동사 리함(רִחַם: denominative로서의 피엘형)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식을 아끼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아주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동사가 사용되는 거의 모든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입니다(신13:18, 30:3, 왕하13:23, 사14:1, 27:11, 30:18, 54:8, 60:10, 렘12:15, 13:14, 31:20, 33:26, 겔 39:25, 호1:6, 2:6, 2:25, 미7:19, 슥10:6 등. 이 외에도 훨씬 많은 예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라는 의미의 동사 하난(חנן)과 평행어로서 사용됩니다.
신13:18[17]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חנן) 자비를 더하사(רחם)”
왕하 13:23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חנן)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רחם)”
이 어근 라함(רחם)이야말로 자신의 자궁 안에, 자신의 품 안에 인간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나타내는 아마도 거의 유일한 성경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2. 시편18:2[1]에 대한 새로운 번역 제안
시편18:2[1]은 노래로도 만들어진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개역개정: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새번역: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공동번역: “나의 힘이신 야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어인 라함(רחם)이 쓰인 “에르홈카(אֶרְחָמְךָ)”를 모든 우리말 성경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번역합니다. 영어번역성경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번역은 그러나 라함이 의미하는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을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이 “사랑합니다”라는 번역은 어근 라함의 여러 파생의미(자비, 자애, 긍휼, 사랑…) 중 가장 문맥에 덜 어색한 단어를 하나 골라서 집어넣은 아주 “게으른 번역”입니다.
시편18:2[1]의 특이한 점은 동사 라함(רחם)이 칼형(기본형)으로 읽히는 유일한 본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칼 동사가 피엘형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면, “에르홈카”는 ‘하나님 당신을 내 자궁에 품습니다’ 혹은 ‘여호와여, 내가 당신을 불쌍히, 긍휼히 여깁니다’라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해석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칼형의 동사 라함은 피엘형의 의미(누가 누구를 자궁 안에 품다)와는 주체와 객체가 뒤바뀐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에르홈카”는 “나는 당신의 자궁 안에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품 속에 있습니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어원적이고 문법적인 이해는 반드시 문맥적 적합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과연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와 “나는 당신의 품 속에 있습니다”라는 해석 중 어느 것이 시편 18편의 문맥에 더 적절한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1)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vs. 2) 나는 당신의 품 안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앞뒤 구절 뿐 아니라 시편 18편 전체가 죽음과 폭력의 위협 속에 갇혀 있는 시인을 보호하고 지키시고 위험에서 건지시며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의 품 안에 있는 것일까요? 어근 라함(רחם)의 피엘형 동사가 우리를 자신의 자궁 안에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고 할 때, 시편 18편의 시인은 칼형의 동사를 사용하여 인생의 험난한 길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 안전히 있음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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