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αδδουκαῖος(사두카이오스, 사두개인)에 대하여
신약성경에 예수의 대적자로 나타나는 유대교 종파 중에 사두개인(Σαδδουκαῖος 사두카이오스)이 있다. 고유명사 Σαδδουκαῖος(사두카이오스)는 신약성경에 14번 나타나는데, 공관복음서에 9번, 사도행전에 5번 나온다. 특별히 마태복음에만 7번이나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예수의 주요한 종교적 대적자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같은 동류의 종교적 대적자로 동일시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마 16: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여라" 하였다(마 16:6)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 16:12)
마태복음 저자의 눈에는 사두개인들보다는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외식이 더 예수의 비판대상이 되고 있다.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가르침에 반박하는 예수의 부활 가르침에 사두개인들의 말문이 막힌 것을 바라새인들이 기뻐하며 예수를 우호적으로 대하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였지만(마 22:34), 이 자리에서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다윗의 시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가르침에도 반박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서기관들(율법선생)과 바리새인들의 교훈과 외식이 예수의 주요한 비판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큰 의를 행하는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는 마태복음이다(마 5: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은 예수의 고난 이야기에서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집단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대제사장들의 가문이 주로 사두개인들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은 주전 37년 예루살렘의 권력을 차지하고 대제사장을 새로 임명하면서 사독의 후손(Zadokite), Chananel을 임명한다(고대사 15.22). 그 후로 대제사장의 가문은 사두개인들이 차지하던 시대였다.
Σαδδουκαῖος(사두카이오스)의 어원적 유래는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레위 지파 사람으로서, 아론의 후손 엘르아살의 자손, 비느하스의 자손인 사람이 사독이라고 말한다(대상 24:3). 다윗 왕을 섬겼던 다른 경쟁자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의 후계자 싸움에서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야를 지지함으로(왕상 1:7), 결국 모반에 가담한 죄로 고향 아나돗으로 추방된다(왕상 2:26).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거쳐 사독의 후손은 성전체제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가문이 되고, 사독의 자손들(בְּנֵ֣י צָד֗וֹק , 브네이 자도크)은 제 2성전시대에도 대제사장의 지위를 얻는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사독의 자손들(בְּנֵ֣י צָד֗וֹק , 브네이 자도크)을 표현하는 헬라어가 Σαδδουκαῖος(사두카이오스)일 것이다. 주전 190년경의 시라의 아들 예수가 쓴 집회서는 오니아 2세의 아들 대제사장 시몬 2세를 찬양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는데, 특별히 히브리어 원문의 부록에는 이 대제사장이 사독의 자손이고, 사독의 자손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선지자 에스겔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힌 레위 자손들을 심판하고, 오직 사독의 자손에게 하나님의 성소를 맡기신다는 메시지를 전하였다(겔 44:15). 하지만 지방 제사장 마카비의 후손들이 하스모니안 왕조에서 왕과 대제사장 지위를 겸하는 것에 반대하던 사독의 자손 오니아스 4세는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의 도움을 받아 이집트의 레온토폴리스에 성전을 세웠고, 일부 사람들은 사독의 자손인 ‘의의 교사’를 따라 유대 광야 쿰란 지역의 에세네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쿰란 문서는 사독의 자손이 공동체의 지도자인 것을 말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예루살렘에 여전히 성전통치 세력으로 남은 사람들이 사독의 자손들인 Zadokites, Σαδδουκαῖος(사두카이오스, 사두개인)이다. 이들은 사독의 후손 중에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현세적 구원론을 주장하며, 1세기 바리새인들의 부활과 내세적 구원론을 부정하였다.
마태복음 22장과 누가복음 20장은 마가복음 12:18에 나오는 사두개인의 부활논쟁에 대한 예수의 반박을 똑같이 자료로 사용하지만, 직접적이고 역사적인 사두개인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역사적 사두개인들의 모습들이 어떠한 지를 보여준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행 4:1-3).
베드로가 성전 뜰의 솔로몬 행각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할 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성전통치(temple government)의 지배계층인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었다. 이들은 같은 신학을 공유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었고,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설교에 민감하였다. 그래서 사두개파 대제사장들의 가문이 중심이 되어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고 심문하여,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예수의 이름을 더 이상 전하지 못하게 하고 조건부 석방을 하였다(행 4:6-21). 하지만 사도들이 계속적으로 성전 뜰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병을 고치고 가르침을 주자, 대제사장들과 함께 하는 사두개인 당파(αἵρεσις τῶν Σαδδουκαίων, 하이레시스 톤 사두카이온)가 그들을 시기하고 분노하여 다시 공회에 소환하였다(행 5:17-28). 예수의 부활을 변증하는 사도들에 대한 분노로 사두개인들이 죽이려 할 때에, 공회의 지도자이며 존경받는 율법선생인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사도들의 사상과 소행을 더 지켜보자고 공회원들을 설득한다. 이것은 사도들이 주장하는 부활사상이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내세와 부활사상과 상통하기에 그들의 부활주장으로 죽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행 5:33-39).
성전통치의 지도자들인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앞마당 성전 뜰 솔로몬 행각에서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을 방관할 수 없었고, 그들의 부활증언은 사두개인의 현세적 신학과 구원론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후에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받을 때, 바울은 자신의 처한 위험에서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일 뿐이라고 공회의 바리새인들에게 호소함으로 사두개파 공회원의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행 23:6-10).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두개인들은 성전통치(temple government)의 권력지향적 종교지도자로서, 그리고 내세와 부활을 거부하며 오직 사독의 자손으로부터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신학에 집착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예수 죽음의 진정한 세력은 바리새인도 로마인도 아닌 사두개인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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