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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2014-06-12 14:24:00
이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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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8일 부활절 다섯째주일 경동칼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는 어떠해야 할까요? 이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습니까? 답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답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관은 한 개인이 '사실' 혹은 '진리' 로 믿는 전제들의 총체(總體)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세계관이 있습니까? 성서를 보는 관점도 세계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서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됩니다.




구약 성서에 희년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구약성서 안에 전승된 이스라엘 전승들은 대개 고대 근동 지방에서 통용되었던 다양한 관습법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희년은 신학적 성격에 있어서 고대 근동의 관습법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띤 법입니다. 즉 희년에 이루어지는 땅과 집 회복, 노예 해방, 채무 면제에 대한 요구는 고대 근동 세계의 수많은 사회개혁 시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러한 사회개혁 요구를 항상 주기적으로 제도화하려고 한 것은 오로지 희년제도뿐이었습니다. 




우리가 희년제도를 마주하며 잊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로부터 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히브리는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당장 먹을 것과 목마름에 지쳐 갑니다. 가나안을 정령하고야 해방을 경험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히브리들에게는 땅이 분배 됩니다. 이 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거래할 수 없습니다.(레 25:23) 하느님께서 땅을 주신 것은 자유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경제적 자유의 근거가 바로 땅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능력이 제각기라 어떤 이는 땅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희년이 되면 경제적으로 자유할 수 있는 땅을 돌려 받아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희년'이란 영어: jubilee'를 번역한 것이고, jubilee는 히브리어: יובל, yobel 요벨을 음역한 것입니다. 요벨은 수양의 뿔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된 이유는 이 독특한 50번째 해가 되면 요벨 나팔을 불며 희년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장 8-55절에 구체적으로 기록된 희년이 되면 땅과 집이 원 주인에게 돌아가고 노예가 해방되며 부채가 면제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희년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누가복음서 4:18-19, 21 말씀은 예수가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늘 하던 대로 회당에서 말씀을 읽을 차례가 되자 맨 처음 펴서 읽은 성서이야기로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는 21절에서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예수가 낭독한 원전에 보다 가까운 이사야서를 살펴보면, 우선 야훼의 영이 예수에게 내린 목적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은 이사야서에 같거나 유사한 표현들이 몇 군데 나오는데 '아름다운 소식'(이사야 40장 9절, 10절), '좋은 소식'(이사야 52장 7절) 등으로 표현되며 그 소식의 핵심 내용은 40장의 경우 '야훼가 장차 강한 자로 임함으로써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는 내용이고 52장의 경우 '야훼가 통치하는 나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통해 가난한 자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소식은 혁명적입니다. 이 혁명적인 메시지를 사회변혁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성서의 메시지가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된다는 견해에 대해 부정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인 관점과 성서의 메시지를 동일시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 혁명적인 메시지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부여하신 올바른 질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느님의 창조질서의 보전과 회복, 하느님의 형상의 회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요한복음 14:10)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철저히 성서의 세계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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