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장호 베네딕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요한복음 14장 1-12절
[찾아온 지니어스]
고대인들은 인간의 창의성이 개인으로부터 비롯되지 않고 ‘지니어스’라는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데서 발휘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이들을 교만에서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잘 해냈다’라며 교만해지는 대신, ‘나의 지니어스가 훌륭했다’고 자기 밖으로 공을 돌렸던 것이지요. 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이 지니어스의 개념이 바뀌게 됩니다. 외부의 신성한 영(spirit)이었던 지니어스가 인간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결과 모든 책임과 고통을 인간 스스로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과물이 잘되면 내가 잘한 것이고, 안되면 내가 실패한 것이지요. 이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때로는 자만심을, 때로는 절망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무아無我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아란 내가 사라지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믿음을 전제합니다. 무아는 단순히 내가 사라지는 허무가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을 하느님께 이양’한다는 적극적인 신뢰입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믿는 태도는 결국 나를 고립시키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이끌고 가신다는 이 ‘무아의 믿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신앙 활동은 여러분이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되면 어떻고, 또 잘 안되면 어떻겠습니까. 잘되면 하느님께서 잘하신 것이고, 잘 안되면 딱 거기까지만 뜻하신 것이지요.
- 생활성서 2026년 5월호 '소금항아리'에서
2. 장성진 목사 (온누리선교교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별세, 내가 죽어 마주하는 새로운 세상]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기독교 신앙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별세(別世)’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별세를 육신의 죽음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별세는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옛사람인 ‘나’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영적 사건입니다. 고(故) 이중표 목사님은 이를 ‘별세신학’으로 풀어내며,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떠나는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자아입니다. 욕심과 교만, 편견과 두려움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비로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고, 그 순간 우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중략)
별세는 세상을 등지는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은혜입니다.
- 국민일보 2026-07-11 <오늘의 설교> 중에서
3.
이중표 목사님을 사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몇 시간 동행한 적은 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요.
제가 고부교회에 근무할 때 일입니다.
목사님께서 교회로 전화하신 후 부탁 하나를 하셨습니다.
수십 년 전 고부교회에서 목회하실 때
함께 하셨던 어떤 권사님의 산소에 가보고 싶으니 안내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주 뒤 내려오셔서 산소로 안내해 드린 후
교회 손님이기 때문에 대접을 위해
부안에서 이름난 바지락죽 식당에 모시고 갔습니다.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식당 여주인이 들어오셨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을 알아본 것이지요.
마침 별세신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별세신앙을 실천하려고 하지만 잘 안됩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고 계셔요?”
옆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저 자신도 목사님 답변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목사님은 조금 머뭇거리시다가 마침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잘 안됩니다.”
이 솔직한 답변이 저한테 너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어서
그다음 하신 말씀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추신]
1번은 별세신앙과 일맥상통하는 글입니다. 한신부님의 글에서 내공(內功)이 느껴집니다. 지난밤 구상한, 오늘(17일) 새벽기도회 신앙교훈의 흐름은 “별세신앙을 잘 정리한 장목사님의 글을 소개하고 이중표목사님 일화를 이야기한 후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대로 살기 쉽지 않지만 노력은 해야 합니다”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결론이 이렇게 가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자기중심적 자아를 강화시키는 신자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별세신앙을 강조했다가는 소심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별세신앙의 처방이 정말 요긴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리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때입니다. 앞에서 “욕심과 교만, 편견과 두려움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욕심과 교만과 편견 같은 외향적인 심성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고 숨막혀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니 이들은 별세신앙 약(藥)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도라 할지라도 별세신앙의 약효를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두려움이나 불안 등과 같은 내향적인 심성이 자신의 삶을 흔드는 때입니다.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지만 소용이 없지요. 내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바로 별세신앙 약 한 정으로 응급처치할 때입니다. 내 자의식을 내 마음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내 마음을 예수님 마음으로 채울 때 숨 막히게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지요.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686 | 이번 주일찬양집회 낭독설교 | 신솔문 | 2026-08-04 | 6 | |
| 685 | 생태적 노래: "나는 반딧불”(가수 황가람) | 신솔문 | 2026-08-01 | 23 | |
| 684 | 성도들이 불안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롬 5:6-11) | 신솔문 | 2026-07-21 | 67 | |
| 683 | [일반 회의규칙] 규칙에 대한 규칙 | 신솔문 | 2026-07-21 | 71 | |
| 682 | 하나님의 진의와 진심 (출 35:1-3) | 신솔문 | 2026-07-18 | 76 | |
| 681 |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고후 3:12-18) | 신솔문 | 2026-07-18 | 70 | |
| 680 | 주님이 주신 권세 (눅 10:21-24) | 신솔문 | 2026-07-18 | 70 | |
| 679 | 사랑과 정의 (삼하 13:20-29) | 신솔문 | 2026-07-18 | 69 | |
| 678 | 응급 처방전: 별세신앙 약 한 정 | 신솔문 | 2026-07-16 | 80 | |
| 677 | 하나님의 큰 그림에 참여합시다 (행 10:1-8) | 신솔문 | 2026-06-25 | 124 | |
| 676 | 복음의 진가 (고후 1:12-20) | 신솔문 | 2026-06-25 | 118 | |
| 675 | 요셉 이야기 속의 이중창(二重唱) [창 44:30-34] | 신솔문 | 2026-06-25 | 115 | |
| 674 | 신앙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맙시다 (레 5:6-11) | 신솔문 | 2026-06-25 | 122 | |
| 673 |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롬 15:1-6) | 신솔문 | 2026-06-25 | 121 | |
| 672 | 다른 교인의 허물로 힘들 때 (갈 6:1-10) | 신솔문 | 2026-06-25 | 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