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교단 | 국민일보 보도
[르포] 리어카 곁 머무는 한 남자…고물상 앞 '차 한 잔'의 위로
김동규 기자 | 국민일보 | 2026-03-19

▲ 징검다리밥상공동체 대표 장순엽 목사가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한 고물상 앞에서 어르신의 리어카를 대신 끌고 가고 있다.
ⓒ국민일보
서울 강동구의 한 고물상 앞. 코끝이 시려오는 오전 공기가 채 풀리기도 전, 리어카를 끌고 온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종이와 캔이 뒤섞인 수레를 입구에 내려놓는 순간, 한 남성이 다가와 리어카를 대신 끌어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차 한 잔 하세요." 손에 쥐여지는 따뜻한 종이컵과 쌀과자. 짧은 인사와 함께 안부가 오갔다.
이곳에서 징검다리밥상공동체 대표 장순엽(46) 목사는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 주일 사역을 마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그는 그저 묵묵히 어르신들 곁을 지키는 사람으로 머문다. 리어카를 끌어주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틈틈이 말을 건넨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역 앞에 요새 좀 바뀌었더라고요." 짧은 대화에 어르신들의 얼굴이 풀리고, 웃음이 번졌다.
지난 10일 길거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에도 장 목사의 시선은 계속 현장으로 향했다. 새로 들어오는 어르신이 보이면 말을 멈추고 먼저 다가간다. 오전에만 10명이 넘는 어르신을 맞이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차와 간식을 건넨다. 고물상 안은 잠시 쉬어가는 자리가 된다.

▲ 징검다리밥상공동체 대표 장순엽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사회선교사다. 차량 뒤편에 차와 간식을 준비해 어르신들을 맞이한다. ⓒ국민일보
김홍자(88) 할머니는 "받기만 해서 늘 미안하다"며 "요즘 몸이 아파 힘든데도 여기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지만, 새벽부터 폐지를 모아 이곳을 찾는다. 그렇게 손에 쥐는 돈은 하루 2000원 남짓이다. 그럼에도 "따뜻한 차 한 잔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장 목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강동구 일대 고물상을 돌며 어르신들을 만난다. 금요일은 독거 어르신 가정을 찾아 안부를 확인하는 날이다. 그가 파악한 고물상만 강동구에 10곳 안팎이다. 요일별로 동선을 정해 순환하며 방문한다. 오전에는 고물상에서 어르신들을 맞이하고, 오후에는 시장과 골목을 돌며 미처 만나지 못한 이들을 찾아 나선다. 하루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는 셈이다.

▲ 장 목사가 고물상에서 어르신에게 차와 간식을 건네고 있다. ⓒ국민일보
장 목사는 스스로를 '잠깐 머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대신 고물상 사장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저는 잠깐 왔다 가지만, 사장님들은 계속 어르신들을 만나는 분들"이라며 "그래서 사장님들과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사회선교사'다. 사회선교사는 특정 교회에 담임으로 소속되지 않고 노동·환경·평화 등 사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를 뜻한다. 기존 교회 중심 목회와 달리 현장을 선교지로 보고 활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교단은 이들을 노회 소속 목회자로 인정해 제도권 안에서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현재 소수의 사회선교사가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교회 울타리를 벗어난 순간 끊겼던 노회 소속이 회복됐고, 교단의 관심과 지원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교회 안에서 사역했던 그에게 거리의 사역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직접적으로 느낀다"며 "필요할 때마다 응답이 오는 것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남는 장면들은 대부분 '기쁨'보다 '이별'에 가까웠다. 리어카를 끌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입은 어르신,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2주 만에 세상을 떠난 이, 물을 달라던 60대 여성이 며칠 뒤 당뇨 합병증으로 숨진 일 등이 있었다.
최근에는 늘 찾아가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아 문을 두드렸고, 결국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진 채 사흘을 버티고 있었다. "계속 보던 분을 갑자기 못 보게 되는 게 제일 마음에 남습니다." 말끝이 흐려졌다.

▲ 장 목사가 어르신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안부를 묻고 있다. ⓒ국민일보
처음에는 "사회복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그 생각을 바꿔 놓았다. 장 목사는 "생각보다 어르신들 가운데 종교에 대한 불신이 높다"며 "험한 삶을 살아온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일수록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루에 만나는 어르신만 수십 명. 많을 때는 한 주에 150명 이상을 만난다. 강동구 고물상 단골 어르신만 따져도 300~400명에 이른다. 그가 건네는 것은 거창한 도움이 아니다. 차 한 잔, 과자 한 봉지, 그리고 짧은 대화다. "어르신들은 대화할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 사는 분들이 많고, 하루 종일 말을 못 하고 지내세요. 그런데 여기 와서 '잘 지내셨어요' 한마디 듣는 게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예수님이 이웃 곁에 머무셨듯,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순엽 목사 인터뷰 전문
Q. 이 사역이 일반 목회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반 목회는 결국 교회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배, 친교, 교육, 선교를 포함하잖아요. 가장 큰 차이가 교회 울타리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교회 안에서 한 20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보다 여기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합니다. 힘들고 괴롭고, 뭔가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거죠."
Q.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시다 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건 좋은 일보다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남더라고요. 어떤 어르신은 리어카를 끌다가 차에 부딪혀 하반신 마비가 되셨어요. 알고 보니 뇌종양 말기였고, 증상 발견 후 2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또 여름에 물 사역을 하는데, 어떤 60대 어머니가 물을 달라고 하셨어요. 3일 뒤에 당뇨 합병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크리스마스 때도 늘 가정 방문하던 어르신 문을 두들겼는데,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된 상태로 3일 동안 계셨던 거예요. 결국 문을 뜯고 들어가야 했어요. 계속 보다가 갑자기 못 보게 되니까 마음에 많이 남더라고요."
Q. 교회적·기독교적 시각에서 왜 이런 사역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저의 분명한 정체성은 목사입니다. 생각보다 어르신들 가운데 종교적 불신이 높은 분들이 많아요. 65세 이상이면 불교나 유교적 배경을 가진 분들도 많고, 특히 험한 인생을 살아오셨고 지금도 힘겹게 살아가시는 어르신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설교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의 실천을 통해 선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Q. '징검다리밥상공동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학부 때 '교회는 밥상 공동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카타콤이나 초대교회 유적을 보면 식사하는 자리와 말씀을 전하는 자리가 함께 있거든요. 그리고 징검다리는 제 사역이 연결해 주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통해 선한 영향력과 도움이 필요한 곳을 연결해 드리는 거죠. 그리고 제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어르신들이 만나는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있어요."
Q. 사회선교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보시나요?
"지금 사회선교에 필요한 건, 교회 담장이 너무 높아졌다는 문제의식입니다. 결국 교회와 사회가 조금 갈라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저는 사회선교가 교회가 지역에 관심을 갖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도 교회와 함께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하고요. 사회선교를 통해 교회와 지역 사이에 알게 모르게 가로막힌 강을 허무는 것, 그게 사회선교사들의 역할이자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출처 : 국민일보 (김동규 기자) — 2026년 3월 19일
원문 : https://www.kmib.co.kr/article/view_amp.asp?arcid=0029550507
※ 저작권법 제28조에 따라 출처를 밝히고 인용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