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אָדָם)에 대한 묵상(김창주)
보통 사람에게 아담을 물으면 성경에 나오는 첫번째 인류이자 최초의 사람이나 남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있다면 아담을 ‘흙’과 연관된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창세기에 아담이 흙, 곧 ‘아다마’로 창조되어서 ‘아담’이 되었다고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흙에서 태어난 아담을 기억하기 위한 단순한 연상이며 비슷한 소리에 기댄 수사법이다. 아담을 여기까지 설명할 수 있다면 부끄럽지는 않은 상식을 가진 셈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이 정도에서 만족한다면 평범한 현실 안주적인 편에 속한다. 아담을 심도 있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더 많은 가능성을 고려하고 구약성서 본문 특유의 수사법까지 살펴야 한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담은 크게 남성과 여성을 통칭하는 인류로 쓰이는 예와, 남자를 가리키는 경우, 그리고 고유명사 ‘아담’으로 불린 예로 나눌 수 있다(창 2:20, 3:17, 21, 4:25; 5:3-5). ‘아담’의 용도보다 어원에 집중하면 다음 네 가지 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
① 아다마(אֲדָמָה): 가장 잘 알려진 설명은 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 창세기 2장 7절을 읽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עָפָר֙ מִן־הָאֲדָמָה)으로 ‘사람’(הָאָדָם) 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히브리어 아담이 땅이나 흙을 뜻하는 ‘아다마’와 ‘먼지’(아파르)가 결합되어 나온다. <개역>의 ‘흙,’ <개역개정>의 ‘땅의 흙,’ <새한글>의 ‘땅 부스러기 곧 흙,’ <흠정역>을 비롯한 대부분 영역의 ‘the dust of the ground’을 참고하라. 아담의 직접적인 출처로서 직역하면 ‘땅의 흙에서 비롯된 그 사람’이 된다. 영어 human은 흙과 관련된 명사로 사람을 뜻한다. 인도유럽어 어근 흙에 해당하는 ‘ghum에서 나온 사람’이란 뜻이다. 곧 아담과 아다마의 관계처럼 사람(human)은 흙(ghum)에서 비롯된 존재로 읽힌다. 문제는 한글 번역어 ‘흙’과 ‘아담’이나 한자의 ‘지’(地)와 아당(亞堂)은 좀처럼 아담(אָדָם)과 흙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고 심지어 어떤 연상도 불가능하다. 로마자가 아닌 문자 체계에서 아담을 아다마와 관련시켜 번역하기란 매우 어려운 과제다. 대부분 현지어로 번역하는 순간 히브리어에 내재된 연상은 무너진다.
이와 같은 아다마와 아담의 관계는 일종의 해음(諧音) 현상에 해당한다. 어느 문화권이나 이와 비슷한 수사법을 찾을 수 있다. 해음이란 소리는 같으나 의미가 다른 차이점을 활용한 기법이다. 유음현상, 언어 유희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한자 ‘복’(福)을 거꾸로 매달아 대문에 걸어 놓는다. 사람들이 들어오며 ‘복’자가 거꾸로네요’란 뜻으로 ‘倒福’(daofu)를 외친다. 그러나 주인은 이 집에 ‘복이 들어옵니다’는 ‘到福’(daofu)로 듣는다. 거의 동일한 발음을 재치있게 활용한 덕담이자 즐거운 언어 유희다.
이와 같은 성서의 수사법은 무수히 발견된다. 예컨대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 2:23)에서 남자(אִישׁ)와 여자(אִשָּׁה)는 비슷한 발음을 통하여 둘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는 기법 중 하나다. 직접적인 해음 현상과는 다르지만 시편 119편의 예도 번역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시편 119가 가장 긴 내용으로 유명하고 각 여덟 절마다 히브리어 첫 자음을 여덟 번 반복하며 계속된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히브리어의 놀라운 수사법은 무력해진다. 의미를 전달하기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아담으로 돌아가면 영어로 흙 대신 earth, 아담 대신 earthling으로 옮긴 학자가 있다. 유니온신학교의 필리스 트리블 교수가 히브리어 ‘아다마’와 ‘아담’을 생동감 있는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개인의 영역에 그친다. 히브리어의 재치를 한글로 살린다면 ‘흙’과 ‘흙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원전의 힘은 읽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는데 번역하면 재기 넘치는 수사법을 지루하게 설명해야 한다.
② 피(דָּם): 두번째 아담의 어원은 히브리어 담(דָּם), 피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어원적으로 신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곧 구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 9:4).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3:17).
모든 생명은 귀하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 17:11).
따라서 아담은 그의 몸에 흐르는 ‘피’의 의미를 강조한 이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담’(피)을 지닌 생명체 곧 ‘아담’이란 설명이 가능해진다.
③ 모양(דמה): 세번째 아담은 ‘다마’ 곧 모양에서 왔을 가능성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דמה)사람을 지으셨다(창 1:26-27). 히브리어 ‘형상’(צֶלֶם)은 모양과 동의어다. 동어반복을 피한 강조법이다. 여기서 ‘모양’, ‘다마’는 형용사 ‘같다’(like)로 쓰이거나(시 144:4; 아 2:17), 앞에 알레프(א)가 덧붙어 하나님과 거의 대등한 존재라는 뜻 ‘아담’이 된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리라(אדַּמֶּה)”(사 14:14).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꿈틀거리는 욕망이 반영된 이름이다.
④ 안개’(אֵד): 희박하지만 아담이 ‘안개’(אֵד)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추측해본다. 아담(אָדָם)이 되면 복수형 꼬리가 첨가된 것으로 이해한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6)에 의하면 안개는 사람의 출현 전에 지표면을 감싸고 있는 물질이다. 특히 사막 기후에서 안개/이슬은 하늘의 비를 대신하여 식물이 자라 열매 맺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물의 신진대사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안개는 아침에 피어났다가 금방 사라진다(사 44:22 참조). 따라서 안개는 인생의 무상을 상징하기도 한다(욥 36:27; cf. 약 4:14). 구약에서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으나 아담(אָדָם)은 안개의 복수형으로 유추할 수 있다. 호세아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다고 예언하듯(호 13:3)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약 4:14) 등으로 해석학적 풀이가 가능하다.
우리는 호모 헌드레드, 이른바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 모두 흙으로 창조되어 흙으로 돌아갈 운명이나(창 3:19) 생명의 소중한 피를 간직한 피조물이다. 겸손을 뜻하는 영어 humiliation은 흙(ghum)에서 비롯되었다. 흙에서 태어났음을 망각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높은 자처럼 되려 한다면 안개처럼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만다. 우리 모두 흙에서 온 아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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